작가 노트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뀔 때까지 지금 비둘기에게 밀려 그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도시에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참새는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어 왔고 여전히 우리 주변 곳곳에 함께 살아가고 있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관심 밖의 존재로 잊고 있었다는 것을 짧은 산책길에서 깨달았다.
나는 바로 이러한 참새를 바라보며 우리 주변에 가까이 존재하지만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가족과 친구, 연인, 이웃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에 착안하여 현대인들의 모습을 참새의 이미지로, 또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을 다양한 색이 반복되는 색동으로 표현하였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이 있는 도시를 따스한 색이 가득한 색동으로 표현한 이유는 두 가지 색 이상이 되어야 색동이 되는 것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야 도시를 이루는 것과 같은 맥락과 삭막한 도시의 외형보다 그 안의 사는 사람들의 어릴 적 색동저고리를 입던 추억의 감성으로 따스한 마음과 행복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참새는 동양에선 기쁨을 가져다 주는 새로 알려져 있다. 이런 참새의 모습을 통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최근 작품에는 종이접기 형식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 종이접기 동물들은 추억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고 사라져가는 동물이기도 하며 상상의 동물들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과거 현재와 공존과 동행의 의미를 두며 미래의 희망을 담고자 했다.
종이접기 형식의 표현은 레이어 기법으로 어두운 부분부터 겹겹이 칠해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만큼 잘 잊고 사는 듯하다.
제 작품이 주위를 따스한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보며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행복에 잠기는 참새가 있는 풍경 – 이미경
장 피에르 레이노라는 프랑스의 화분작가가 있다. 그는 미술을 하지 않은 비전공자로 전 세계에 가장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릴 적 앞마당에 있던 화분에 꽃을 심은 뒤 피고 지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을 했다고 한다. 후에 그는 원예를 전공하면서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시멘트로 속을 메운 빨간 화분, 금색 화분 작업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렇게 예술가에게 작업이란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 가슴 속에 남은 감성을 표현하는 일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한다.
참새와 풍경을 독특하게 구성하는 화가로 알려진 이미경 작가도 이러한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미경 작가는 어린 시절 참새를 바라보면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지만,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가족과 친구, 연인, 이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실제 좀 드물기는 하지만 변함없이 참새는 우리 곁에 있고 여전히 수많은 참새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미경은 그 참새들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그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일관되게 화폭에 등장한다.
그 가운데 먼저 <호랑이와 함께>(2021)한 작품을 보자. 호랑이의 형태를 지닌 그 위에 세 마리의 참새가 올라가 있다. 참새는 매우 사실적이고 자연의 있는 크기 그대로 작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호랑이는 실제의 호랑이가 아닌 종이접기로 만든 색동저고리의 빛깔을 그대로 닮은 호랑이이다.
이렇게 그의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그곳에는 빠짐없이 참새가 등장하고, 그 참새는 꽃과 함께 있는 꽃병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꽃병은 색동종이로 접은 꽃병으로 형상화된다. <봄의 합창>에는 벚꽃이 만발한 배경 앞에 마치 다섯 가지 색깔의 전깃줄이 있고, 새들이 정겹게 혹은 앉아있다. 그 참새들은 <꼬까옷>(2018)에도 커다란 새 위에도, 종이학 위에도, 강아지와 고양이 위에도 어김없이 올라가 있다.
그 색동으로 꾸며진 대부분 동물의 형태들은 디자인처럼 각진 색채로 표현되어 있다. <설렘>(2019) 같은 작품들에서는 그 디자인적 요소들이 화면에 장식적으로 녹아들어 충분히 회화적인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림 속의 배경이나 주제는 꽃과 나무에 한정되지 않고 바다와 파도 등 4계절을 담아내지만, 그 모든 작품에는 참새가 감초처럼 끼어있다. 작가는 이 작고 귀여운 참새를 또 하나의 자신 혹은 하나의 <현대인>으로 의인화시키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온통 시멘트 건물로 둘러쳐진 삭막한 도시의 모습은 분명하다. 그 칙칙하고 을씨년스럽고 답답한 도시의 풍경을 작가는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 한다. 적어도 그림 속에서 만이라도. 그리고는 그곳에 곱고 색동 색으로 치장한 동물에 참새를 한결같이 불러들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마도 작가의 두 가지 염원과 의지가 스며 있는듯하다. 하나는 우리가 잊고 사는 유년의 향수와 추억을 그 참새들을 불러들이면서 그때로 시간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거칠고 척박한 삶 속에서 잃어버린 봄날의 꽃과 참새와 풍경들을 회상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껴보라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즐거움이며 행복한 삶이 아니겠냐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근데 왜 참새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그 참새가 짹짹거리던 과거의 시간여행을 보내는 것이다. 이미경 작가가 줄기차게 그리고 작품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행복‘ 해야 하는 인간들의 삶이다. 작가 또한 자연과 도시 속에서 어우러지는 삶 그리고 그 속에서의 휴식, 쉼이 바로 행복의 첫걸음임을 발언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의 쉼 시리즈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여기 화폭에 등장하는 참새의 표현도 한결같다. 원래 참새는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가 같으며, 등은 갈색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고. 목 뒤에는 흰색 가로줄이 날개에는 두 개의 흰색 띠가 겨울에는 부리 아랫부분에 노란빛이 특징을 보이는데 이러한 특징이 그림 속에도 그대로 묘사된다.
우리는 여기서 작가가 작품 속에 남기고 싶어 하는 몇 가지 의도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참새의 고집스러운 등장에 의미이다.
참새는 일단 귀엽고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아주 적격인 대상임은 분명하다. 11세기에 최백이 그린 화조화 <겨울 참새>에서 느끼는 동등한 참새는 아니지만, 특히 이 참새는 인간에게 이로움도 주지만 곡식을 해하는 조류이기도 하다.
또한, 동양에서는 참새를 곡식과 더불어 수확과 풍요의 기쁨을 지닌 그래서 까치와 더불어 기쁨(喜)을 가져다주는 의미로 상징된다. 특히 중국 청나라에서도 참새무리 그림이 축복을 전해주는 그림으로 인기가 많았고 회화적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다. 두 번째로 작품에서 보이는 표현의 구성 양식의 특별함이다. 즉 서로 다른 표현기법의 조합으로 완결된다는 점이다.
초기작에선 색동에 관한 표현이 돋보인 다양한 색채를 활용하면서 장식성과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하게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참새는 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되고, 색동으로 만들어진 동물들은 다분히 장식적으로 마치 색채가 칠해진 피아노 건반처럼 아기자기하다. 그리하여 색면이나 무지개 색 띠처럼 참신하고 산뜻한 효과를 주고 있다. 물론 최근의 작품은 이전보다 이야기도 풍부하고 이전보다 훨씬 서정적인 인상들을 주는 오브제들이 재치있게 등장한다. 세 번째는 〈도시의 속삭임〉과 〈다른 곳으로 행복을 전하러 간〉 〈새벽–첫사랑〉 등에서 보이는 사계절 자연의 풍경과 사물을 자유롭게 빌리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표현에 접어들고 있다는 인상이다. 특히 구성에서 볼 때 이미경 작가의 화면 구성은 기본적으로 참새와 색동 그리고 배경으로 집약된다. 비교적 단순한 구성과 구도로 형성된 이 줄거리의 관계들은 하늘 공간과 연결되며 여기서 그녀의 핵심적인 오브제는 참새이다. 두말할 것 없이 그의 화폭에 참새는 유년 혹은 자신의 의인화된 등가물로 비유된다. 이런 이야깃거리를 바탕으로 종종 배경에서는 뿌림과 번짐의 동양적 기법으로 아름다운 수국이나 장미, 붓꽃들이 경쾌하게 등장한다.
어쩌면 작가는 이 풍경을 만들어 놓고 그 참새가 있는 그림 속에서 그 시절의 시간과 공간을 즐기며 산책하고 싶어 한다. 그녀의 그림마다 행복한 무지개가 있는 도시를 떠나 꿈꾸는 세계로 거니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그것이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이런 참새의 모습을 통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하며 행복한 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스스로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이미경의 그림들은 우리를 어린 시절로, 추억의 공간으로 안내하는 상쾌한 즐거움이 분명하게 화폭에 존재한다. 그래서 참새의 모습을 통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이야기, 그 시절의 추억을 상상하고 그림으로 만나보는 순간만큼은 행복한 풍경에 우리는 머물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꿈과 욕망, 희망이 우리에게 아무런 가림막 없이 맑은 영혼으로 우리를 불러 세우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림을 보는 내내 우리를 어딘가에 밀어 놓고 행복감을 준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진실이며 그녀 그림을 붙들고 싶은 매력이자 생명력이다.
동양에서 그림을 마음을 드러내는 사의(寫意)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